171. [단편] 94년에 쓴 단편 소설 -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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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rtts at 2004년 11월 01일 Monday , Hit : 5480  


하드디스크 불량 -> 포멧 으로 유실되었으나,
나우누리(그 당시 유행했던 PC 통신 업체)에 올려져 있었던 것을 찾아내어
다시 올려 봅니다.

유치하지만 나름대로 풋풋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 싶군요.





┌───────────────────────────────┐
│                                                                                             │
│                        겨울 나기                                                        │
│                                                                                             │
└───────────────────────────────┘
                                                         : 채 수원
                                                        

                                                          
겨울이 갔다.

그 길고 지루했던 겨울......

여느해 보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정말 언제까지고 가지 않을것
같던 겨울은 어느새 소리소문 없이 어디론가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리고 또 언제나 처럼 봄이 왔다. 그 누가 원해서도, 바래서도
아니지만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도 언제나 처럼 그 봄을 맞았다.

내가 처음으로 `대학'이란데를 들어가던 그 해 봄....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느꼈던 좌절감은 어느새 먼 기억속에 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퇴색해 버렸고 지금의 난 단지 현실에 내 모든걸
걸고 있다.

작년.....

작년에 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회와 절망속에서 살았던가...

난 흔히들 말하던 "재수생" 이라 불리는 족속의 한 부류를 차지하고선
마치 로마 시대의 낙인 찍힌 노예처럼 `공부' 라는 것에 내 모든걸
걸어야만 했다. 8절 시험지 몇장에 난 바보같이 울었다 웃었다 하는
광대짓을 하며 한해를 보내야 했던 거였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대학
이란데를 들어 가게 된 것이다. 그 `꿈의 광장'이란 데를 말이다.

그러나....

형....

언제나 웃으며 공부가 얼마나 재밌는지를 나에게 이해 시키려고 애썼던 형...

나와는 달리 형은 정말로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것 같았다.
난 그것이 언제나 신기할 뿐이었다. 공부가 재미있다니...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불가사의한 역설처럼 느껴졌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형은 농담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 사실은 내가 형을
존경하는 부분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로인해 나도 공부가
재밌어서 막 하고싶었으면 하는 생각을 곧잘 하곤 했다.
  
그랬던 형..... 그렇게 공부를 좋아 했던 형은.....

그러나 막상 고등 학교를 졸업했을때 형은 대학에 가질 못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가질 않았다.

아버지,어머니의 기대를 져버린 채 형은 `대학은 놀고 먹으며 돈쓰는
곳'이라며  일찌감치 `사회'라는 그늘진 울타리로 뛰어 들었다.

형을 `제일로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나...
형을 볼때마다 흐뭇해 하시던 아버지...
곧잘 나보고 네 형좀 닮으라며 놀리던 누나...

그리고...

대학가면 읽고 싶은 책이 많을꺼라며, 그때 보고싶은 책을 사겠다고
벌써부터 아버지,어머니 몰래 용돈을 모았던 형...

그러던 형은 어느날 갑자기 전혀 딴 사람처럼 변해선
너무나도 위선적인 한 마디를 하고는 대학을 포기 했다.

'전 대학갈 생각 없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만약 아버지께서 다니시던 그 회사가 파산만
하지 않았어도 그때 만약 아버지의 취직이 곧 되리라는 확신만 있었
어도 형은 조금은 다른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대학을 그렇게
허무하게 포기하진 않았을 꺼다. 그렇게 형은 대학을 포기한 채 직장을
구했고 그 뒤를 이어 졸업한 누나도 마찬가지로 직장을 구했다.

누나가 고등학교 졸업을 맞았을때 우리 부모님은 여자는 대학 갈 필요가
없다는 고루한 생각을 마치 만유 인력의 법칙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계셨으며 누나 또한 능력도 부족하고 갈맘도 별로 없었다며 순순히 당신들의
말씀에 따랐다.

그리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러나 막상 내가 졸업 하던 해에 난 정말로 내가 얼마나
어린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고3 이었을때, 그러니까 벌써 재작년이라 불리는 그때
우리집은 아버지께서 직장을 잃으신 뒤 사업을 하신다고
빚을져서 그 조그만, 소량의 옷을 도매로 사다가 소매로 파는
정말 사업이라 불리기도 우스운 사업을 하시다가 그것마저
잘 안되는 바람에 집을 넘기고 월세를 살 때 였다.

그때 난 예전의 형이나 누나만큼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아니... 아주 많이 못했다.  그러나 난 형이나 누나를 보며
`까짓거 대학 안가도 잘들 사는데 뭐..' 라 생각하며 공부 못해서
대학을 못간다는 사실이 하나도 부끄럽다거나, 다른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간다는 아이들을 부러워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하길 `대학 가는 사람도 있고 나같이 안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고 그런거지 뭐..' 라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나 자신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대입 시험이 가까와 왔을 무렵 나는 집안 식구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저... 아버지... 저 대학 안갈래요. 실력도 안되고 설사 붙는다고
  해도 돈도 많이 들잖아요. 그러니 저도 일찌감치 취직해서 형처럼
  돈이나 벌려고 해요.  대학 가봐야 뭐하겠어요?
  형 말마따나 대학가봐야 놀고 먹으며 돈이나 쓰게 되지 않겠어요?
  그렇지? 형~ "

그때......

그때까지
난 세상에 태어나서 형이 그렇게 화를 내는 건 본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형에게서 `두려움' 이라는 걸 느꼈다.

난....
난 너무나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채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무엇이 그리 형을 화나게 했는지, 그걸 생각지도 못하고 그냥 마냥
형에게 야단을 맞아야만 했다.

  "너....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대학을 안 가겠다니?
   시험도 치기 전에 어떻게 그럴 말을 할 수가 있어?
   이 짜식...    넌 배알도 자존심도 없어? 남들 다 가는
   대학에  넌 시험도 안치겠다는 말이야?
   이 병신 자식아...  네가 내 동생이란 말이야? "


형을 제외한 우리집 식구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버지는 방을 나가셨고 누나와 어머니는 형을 말렸다.

그리고 나는 형의 계속 되는 말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 했다.
그리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소리치고 말았다.

  " 형! 왜 그러는 거야? 형도 대학 안가고 누나도 안 갔잖아...
    그리고 형도 같은 말을 했잖아. 그런데 형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어? "


   철썩..............


  "바보 자식... 이 병신 자식아.... "

  형은 그렇게 말하곤 나가 버렸다.
  그리곤 하루종일 형을 보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형에게 따귀를 맞았다.

  난 그때 아픈건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 느낀건 아픔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그렇게 믿고 따르던
  형에게 맞은 따귀는 나에겐 너무나 슬픈 일이었던 것이다. 형이 너무
  미웠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혼자 울면서 날을 보냈다.   그러다 다시
  형을 보게 된건 다음날 새벽녁이 다 되서야였다.

  그날...

  내가 처음으로 형에게서 따귀를 맞았던 그날...

  나는 무언가 모를 서러움에 밤을 세었고 하루 밤만에 너무나 많은
  생각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집안 식구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난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초 겨울 새벽이라 그런지 날이 매우 추웠고 더우기 난 가을 교복
  차림이라 더더욱 춥게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부터 교복 위에 외투를 입고 다녔지만
  난 나 자신의 이상한 자존심이랄까? 웃기는 자만이랄까? 하여간
  계속 그런걸 입지 않은 채 그 무언가를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무언가... 하나도 멋있지도 않은 정말 웃기지도 않은 그런걸
  난 나타내려 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나는 언제나 끝내 입지 않았다. 겨울이 다 가도록 말이다.
  그날도 그냥 교복만 입은채, 그래서 속으론 매우 추었으나 단지
  옷깃만을 꼭 여민채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섰을 때 난 시멘트 하수관을 쌓아 놓았던 마을 공터에서
  아주 익숙한 한 사람의 뒷 모습을 보았다.

  형이었다.

  형은 하수관 위에 앉아 흰 연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난 약간 놀랐다. 형이 이시간에 저기서 뭐하는 거지?

  이미 그 때는 형에 대한 미움은 어느 정도 사그라 들어 있었다.
  어제밤 한참을 울다가 멈췄을때 나는 내가 뭣 때문에 그리 서럽게
  울었는지 조차 생각이 안날 정도 였으니까...

  난 잠시 망설였다. 형에게 아는 체를 할까 말까...

  그러나 그 순간 어제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난 그냥 지나치기로
  마음 먹었다. 그냥 지나쳐서 골목길로 접어 들려 할때 저만치서
  형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난 순간적으로 고민을 했다. 과연 뒤돌아 보고 대꾸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못 들은척 가버릴까 하고 말이다. 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그대로 뒤도 돌아 보지 않은 채 그냥 걸었다. 다시 한번 형이
  날 불렀을 때는 형이 어느새 내 등 바로 뒤 까지 와 있었다.
  벌써 학교를 가느냐는 형의 말에 난 어느새 어제 일의 연속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퉁명스레 대꾸를 했다.

  " 내가 학교를 가든 말든 형이 왜 상관이야? "

나는 내가 이런 말을 형에게 했다는 것에 나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정말 내가 어떻게 변해만 가는 것 같았다.

  " 어제는 내가 정말 미안 했구나. 나도 모르게 그만...
    시간 있으면 나랑 얘기 좀 할까? "

난 형의 그말 마저 무시할 용기는 없었기에 못 이기는 체 하며
형과 함께 공터로 돌아왔다. 둘이 나란히 시멘트 하수도관 위에
앉았다. 그리고 형은 어느새 또 하나의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얼마간을, 그렇게 얼마간을 형과 나는 말없이 앉아서 계속 앞만 응시 했다.
날은 아직 어두었고 간간히 운동 하러 나온 사람과 신문을 돌리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비쳐질 뿐이었다.

잠시 후 형이 먼저 말을 열었다.

  "네가 벌써 고 3 이구나. 언제나 어린애 같이 굴더니 어느새
   다 컷구나. 벌써 대학갈 나이라니..."

형은 약간은 미안한 그리고 약간은 슬픈 눈으로 날 쳐다 보았다.

형.....

이미 5 년전에 형은 나의 처지에 있었다. 고 3 이라는...
어쩌면 형은 그때의 기억이 다시 생각났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지껏 우리집이 이렇게 나마 살수 있었던건 순전히 형 덕택이었다.

형이 형의 꿈을 포기한 그 댓가....
우리는 우리가 빼앗은 형의 꿈의 댓가로 여지껏 살아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형의 그 얼굴을 본 순간 난 사람이 죽음에 임박했을때야 느낀다던
그 무언가가 머리를 빠르게 쓸고 지나갔다. 나를 아프게 하는 기억들...

고등 학교를 들어가던 해....

헌 교복을 어디서 구해온 어머니에게 한없이 투정을 부리던 나....

그걸 본 형은 자신이 하나 사주마 하고 내게 말했다.
그때 내가 철 없이 얼마나 좋아 했던가....

그리고 형은 그로 인해 야근 수당으로 받은 돈을 모두 내 새 교복에
쏟아 넣어야만 했다.

그리고 또다른 기억들...

처음 월세로 이사를 가던 날 새 집으로 가는거냐며 좋아했던 기억...

아버지가 직장이 없으실 무렵 가족 명세서에 아버지 직업란에 무어라
적어야 할지 몰라 중소기업 사장이라 적던 기억...

내가 형에게 책값으로 받은 돈을 오락에 모두 날린 기억...

도시락 반찬에 투정을 부리던 기억....

그 좁은 집에 들어 오기 싫어서 밖에서 서있던 기억...

그런 기억들....

지금도 생각할 때 마다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기억들...

그런 기억들이 내 머리 속을 뚜렷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뒤따라 느끼는 죄책감.

  " 어제는 많이 아팠니?  정말 미안 하구나...

    그러나 난 어제 너에게 너무 실망을 했다. 노력도, 아니 시도도
    하지않고 포기 한다니 그건 말도 않되는 거야. 내가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서도 집에 웃으며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가 넌
    뭔 줄 아니?  그건 바로 너 때문이란말야.

    그리고...

    난.... 그래 난 네 말처럼 대학을 그렇게 포기했어. 그러나 내가
    그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또 무언줄 알어?
    그것도 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난 말야... 난 나의 꿈을 네게 걸었단 말야.
    네가 나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넌 모를 꺼야.
    넌..   넌.... "


  그때 형은 일어나서 내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뜻밖의 말과 행동이었다.

  형의 꿈?

  난 그때 처음 으로 형의 꿈이란걸
  생각했다. 형의 꿈....

  나는 그때까지 형이 정말 대학은 가기 싫어서 안 간 걸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말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한번도 대학 안간걸 아쉬어 하던
  모습을 내게 보이지 않았던 형이었다.

   그러나 ...

   지금 내앞에 서 있는 형은 내가 생각하던 형이 아니었다.

  형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때 난 형의 눈물을 보았다. 형의 눈물....
  무엇이 형에게 눈물을 보이게 한 것이었을까?

  형은 담배를 옆 전봇대에 눌러 끄며 말했다.

   " 담배연기가 잘못 들어 갔나보다. 왜 이리 맵지... "

  그러면서 형은 연신 눈을 비벼댔다.

  형.....

   " 이런... 이제 학교 가야지? 미안하다. 학교가는 널
     붙잡고 이런 말을 하다니... 아참... 도시락은? "

  난 그때 너무 이른 아침이라 누나를 깨워 도시락 싸달라는 말을
  할수 없었기에 그냥 나왔던 참이었다.

    " 도시락 안가져 왔지? 이거 갖고 가서 뭐라도 사먹어라..
      군것질 하지 말고 배부른 걸로 먹어야 되.. 알알지? "

   형은 그 누런 작업복 바지 호주머니에서 5000 원 짜리 한장을 꺼내
   내게 주었다. 꼬깃한 것을 애써 핀 흔적이 있는 돈.... 아마
   내게 주리라 마음 먹고 있엇던 돈일것이다.

난 그때 순간적으로 성장을 한것 같다. 애벌레가 변태를 하듯 나의
정신은 새롭게 변해 갔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어렸던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후 난 여러가지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내 자신을, 그리고
남들을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로인해 짧은
기간 동안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얼마 뒤에 치룬 입시에서 난 담임 선생님이 예상했던 대로
그냥 힘없이 떨어졌고, 난 또 하나의 비애를 느꼈다.

하지만 그 해에 난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로 성장을 했던 해였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 때 난 처음으로 나이를 먹고 인생을
깨닫고 성장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것 같다. 비애란 것
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난 재수를 하기로 마음 먹었고 집안 식구들 모두 거기에 응해 주었다.
특히 형.....

그 해 겨울 나는 오랜 만에 겨울이 추운 줄 모르고 지나갔던것 같다.
난 나와 형의 꿈을 느끼며 그 해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엔
그 꿈을 이뤘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작은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눈 뜬 그 해 겨울...
  내 인생에 있어서의 첫 `겨울 나기' 는 그렇게 시작 되었다.

  




               사람이 성장을 하는데 필요한 세가지는

                                           사랑과

                                           죄책감과

                                           죽음이다.



                                            
                                            
                                       1994년 겨울에
                                    By 여름으로 가는 문
                                        DOORToTheSummer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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