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단편] 9년 전에 쓴 단편 - 푸른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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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rtts at 2004년 11월 08일 Monday , Hit : 5471  

1년에 한 편 정도씩 단편을 썼었군 싶다. (-_-);
꽤나 유치하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진지했었다우..

그러고 보면, 대략 10년 전 이후로는 그닥 글쓰는데 발전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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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푸른 빛                                                       │
│                                                                                       │
│                                                                                       │
└─────────────────────────────┘
                                                      : 채수원


  아직도 그 때가 생각이 납니다.
  
  지금보다는 훨씬 순수했고, 지금보다는 더욱더 활기 있었던
  내 나이 스물 되던 해의 이야기들이...
  
  내 삶의 비애와 기쁨이 존재하기 시작하던 때의 시간들이,
  이제는 낡은 사진틀 속의 누렇게 바래 버린 사진처럼 되 버린
  그 때의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내 인생이 지금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 제가 내딛은 그 한발이
  지난 10년의 일들을 모두 만들어 버렸는 지도 모릅니다.
  
  후회를 하는 거냐고요?
    
  차라리, 차라리 후회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비오는 날 미친 사람처럼 소리라도 실컷 지르고 모두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회색빛 거리로 쏟아지던 소나기가 쓸어 가듯 기억을 지울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라도 잊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리지요. 제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잠버릇 하나, 좋아하는 반찬 하나까지도
세세히 알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지요. 바로 그
사람 이야기를  말입니다. 얼마나 용기가 없고 비겁한지 이런
식으로 밖엔 말을 꺼낼 수 없는 못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어느것 하나 잘하는 것도 없고, 다부지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하며 소극적이라 뭐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내가
제일 경멸하는 스타일의 그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느 날 부터인지 선배 누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고,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그녀를 말입니다. 선배는 그저 아는 후배로 친절히 대한 것
뿐이었으나, 그는 여지껏 살아오면서 받아 보지 못한 관심과
친절에 그만 마음을 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의 잘못에 우선 큰소리로 나무라고 보시던
아버지와는 달리, 잔소리와 짜증으로 그의 허물을 낱낱이
열거하시던 어머니와는 달리 그녀는 그의 말을 끝까지
진지하게 경청해 주었으며 그가 지은 잘못에 사랑을
보여주었으며 격려로 그를 도왔습니다.
  
어쩌면 그는 그녀에게서 어머니나 아버지에게서는 받지 못했던
사랑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점점더 그녀에게
기대려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비틀리게
만드리라는 직감을 했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다고는 했으나 생각이 옅고, 우유부단
하며 소극적인 그에게 사랑이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누구
한사람 그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연상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그의 심정을 친한 누구에게 말할 용기조차 없었기에
당사자에게 말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용기에 용기를 내서 한 말이란 게 고작

  `누나 악수 한번 할래요?'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것도 누나가 술에 반쯤은 취해 있던
어느 날에 말입니다.
  
비록 비겁하게 그런 식이지만 그는 술자리에서 처음으로
누나의 손을 잡던 날을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은
가슴 떨리는 설레임에 잠못이루던 날을 그는 생각합니다.
누나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게 꿈이 되버린 그는 며칠을
그저 맨손만을 쥐었다 폈다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루는
누나 앞에서 괜히 손을 자꾸 쳐다보다가는 멋쩍어
  
`누나... 제 손은 왜이리 크죠? 누나 손은 참 작네요.'
  
라고 둘러대던 그 날을 생각합니다.
  
근데 이상하게 그녀 생각을 할 때면 꼭 그의 눈엔 뭐가
들어가거나, 아퍼지나 봅니다. 항상 눈물을 흘리니 말입니다.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왔는데 계속 나올 눈물이 있는걸 보면
눈물샘이란 마르지 않는 건가 봅니다. 정말 언제까지고 마르지
않는 건가요? 이런 나약한 모습을 계속 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사랑한다는 말이, 그 한 단어 네 글자의 말이 입을 통해
세상으로 나오기가 그렇게 힘든 말인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가슴 떨리는 설레임에 수년을 고생하고도 계속 그 길을 택할
만큼 어려운 말인 줄은 미쳐 몰랐기에 그는 더욱 좌절합니다.
  
한때 시련 당한 친구에게 잊으라고 했던 말이 얼마나 생각
없고 무책임한 말인가를 되새기곤 합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 본위적 말이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대답한 말을 떠올립니다. ` 난 내 감정에 충실할 뿐이야.
누가 뭐래도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함없어.' 라던 귀절이
그에게 이렇게 와 닿은 적이 없는 요즘입니다.
  

  이미 다 지나가 버린 일이지만, 벌써 단풍을 여러번 보고
  넘긴 이야기들이지만 아직도 이렇게 뚜렷이 기억이 나는 건
  왠지 모 르겠습니다. 이젠 대상도 없고, 의지마저 사라져
  버리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기억만은 점점 선명해지는 건 무슨
  모순되는 억척 인지...
  

그렇게, 그렇게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는 이젠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되 버렸습니다. 그도 군대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가기 싫었습니다. 정말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적대 감을 표시했으나 가야만 했습니다. 2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는 그는 참담해 해야만 했습니다.
고통의 늪에서 일상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가 몇 번의 휴가로
나올 때면 번번이 찾는 사람 을, 번번이 못 만나곤 했습니다.
정작 다시 그녀와 대면 했을 때는 그가 제대를 하고도 한참이나
지나, 머리카락이 어색하게 한참이나 자라 있던 때가 되고서였습니다.

그녀를 보고는 그는 반가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이
유난히 많아 그녀에게 놀림을 곧잘 받고서는 고치려 애쓰던
그였지만 그 순간엔 다 잊어 먹고는 그냥 펑펑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희미한 미소로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녀 뒤로는 당황해 하는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태연했고, 그녀 뒤의 남자는 너무 당황스러워 하는 게
이상한 촌극을 연상시켰습니다. 조잡한 배경의 거친 무대
위에, 3류 배우의 지리멸렬한 대사가 등장하는 그런 촌극
말입니다. 그의 자리엔 그가 모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의 자리란 게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녀 곁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절망을 했습니다. 또 눈물을 보이는 못난 짓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오히려 감사 기도마저 드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녀
곁에 다가갈 수 있는 두 다리가 멀쩡함을, 언제든 빛나는 그녀
모습을 볼수 있는 두 눈이 선명함을, 아직도 귀 기울이면 가슴
설레게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두 귀의 건재함을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세월은 물 흐르듯 지나갔고, 교정의 나무들도 그 색깔을
바꾸기를 여러 번을 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졸업을 했으나
아직도 그는 학교에 남아 있습니다. 그녀를 잊기 위해
무단히도 노력한 그였으나 이미 포기한지 오랩니다. 언젠가
선물로 받은, 이젠 많이도 허름해진 그 지갑을 그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꺼내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 있는, 네
귀퉁이가 닳아 수 십년은 된것 같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헤아리기 힘든 사진을 한장 꺼냅니다.
  
하늘은 맑은데 웬일인지 그 사진 위로 빛나는 물방울이
서립니다. 사진 위에 남은 자국을 보니 이번이 처음은 아닌가
봅니다. 그는 그 사진을 바람에 날려보냅니다. 멀리, 가능하면
그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멀리 바람에 날아가 주길
빌지만 야속하게도 사진은 몇 미터 앞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다시 주워 날리고, 또 날리지만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정말,
정말 야속한 사람입니다. 정말 힘든 시간들입니다. 그는
그것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조소하며,
쓰디쓴 표정으로 다시 사진을 집어 넣습니 다.
    
그리고 가방속 책갈피에서 약간은 큰 편지 봉투를 꺼냅니다.
인쇄체가 아닌 손 글씨로, 아마 그녀의 글씨 인 듯한 필체로
낯익은 이름 석자가 그 못난 이름 세 글자가 써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가늘디 가는 그 필체로 말입니다. 봉투는 반으로
접어 다시 가방에 넣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카드를 다시 한번
쳐다봅니다. 그녀의 이름과 낯선 남자의 이름 이 나란히 써져
있군요. 무슨 카드인지 날짜와 약도도 함께 있습니다.
  
목요일이군요. 다음주 목요일이군요. 그녀를 처음 만난 날도
목요일 이었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대면한 날도
목요일인데, 그녀를 떠나 보내야 하는 날도 목요일이
되겠군요.
  
벌써 오래 전에 알았는데,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벌써 수년 전에 알았는데, 믿을 수가 없어서, 믿고 싶지가
않아서 잊고 살았는데, 잊으며 살았는데...
  


목요일이 되었습니다. 목요일이 와 버렸군요. 아무리 기도를
하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시간은 가 버리고 마는군요.

오래된 양복과 어색한 넥타이의 그 입니다. 거울을 보고서는
그 지긋지긋한 모습에 이유 모를 미소를 짓습니다. 방을
나서다, 다시 책상 가로 돌아옵니다. 잊을 뻔 했군요. 잃어
버릴 뻔 했군요.

그 서슬 퍼렇던 봉투에, 그 이름 새겨진 봉투에 오래 전에
썼어야 했던, 그때 그렇게 가슴에서 벗어버려야 했던 그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참 날씨가 좋네요. 오랜만에 보는 구름 없는 하늘이네요.
바람이라도 좀 불어 주었으면 싶습니다. 눈을 못 뜰만큼,
나무가 넘어져서 길을 모두 막아 버릴 만큼만 불어 주었으면
좋겠네요. 너무 맑아 오히려 서러운 날입니다.

모두들 웃습니다. 모두가 웃어야 하나 봅니다. 저만치에 그
사람이 보이는 군요. 그녀 뒤에서 무슨 일인지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며 당황해 하던 그때 그 사람이군요. 그는 잊어 먹지도
않습니다. 잊어 먹을 수가 없나 봅니다. 그 사람은 어떨까요?

그녀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끝내 기다려야 하나
봅니다. 마지막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면 그녀와 한
약속을 못 지키고는 또 그 여린 모습을 보일 것만 같은데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가슴속 주머니의 봉투를 만져 봅니다. 그녀의 그 손으로
쓰여진 마지막 물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그는 계속
어루만집니다.

음악이군요. 시작하려나 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나?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합니다. 숨이 가빠 옵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문 안쪽으로 들어가고, 문은 서서히 그
위엄을 내세웁니다.

그는? 그는?

그는 끝내 들어가지 못하는 군요. 그냥 문에 기댄 채 닫혀
가는 문에 손을 얹은 채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줄어듭니다. 그는 깊은 숨을 쉬고는 자신에게 안도를
강요합니다. 들어가지 못한 자신에게서 비로소 묘한 연민을
느끼나 봅니다. 정말 잘 한 일인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지 않는걸 정말 장하게 여기며 문을 막고는 기대섭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불립니다. 이럴 리가 없습니다. 그래선 안됩니다.
그렇군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입니다. 안됩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선 안됩니다. 그러면 그는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말 겁니다. 그도 그걸
압니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맙니다.

웃었습니다. 정말 웃었습니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말입니다.

그녀군요. 그녀가 맞습니다. 그보고 항상 눈물이 많다고
핀잔주던 그녀가 오늘은 눈물을 보이는 군요. 넥타이가
엉망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는 군요.

  첨보는 옷입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옷은 거의 다 알고
있었는데, 이건 처음 봅니다. 이런 옷을 그녀가 입은 모습을
그는 처음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겠지요.

음악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문이 다시 열립니다.

그가 여기 계속 있어선 안됩니다. 벌써 그녀는 화장에 얼룩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안주머니로
급히 손을 가져갑니다.

봉투. 그 푸른 빛의 봉투입니다.

떨리는 손에 그만 봉투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그녀도 그걸
보는 군요.

그러나 그가 다시 봉투를 손에 쥐었을 땐 이미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식장 안으로 걸음을 내딛은 후였습니다.



정말 날이 좋습니다. 얼마 만인가 싶습니다.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 없는 게 봄날씨 같지가 않습니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좋은 날이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날도
아마 목요일이었을 겁니다. 아니, 확실히 목요일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날엔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 날것만 같습니다. 거울을 보고서는 이젠 많이
변해 버린 그에게 이유 모를 미소를 띄웁니다. 그는 예의 그
양복에 어색한 넥타이를 메고는 집을 나섭니다. 다시 한번
빠진게 없나 살펴봅니다. 안주머니를 만져 봅니다.
바삭거리는 폼이 꼭 봉투 같습니다.

참 날씨 좋네요. 바람이라도 좀 불어 주었으면 싶은 참에 마침
바람이 붑니다. 이제 좀 기분이 나아집니다. 바람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되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단 생각이 듭니다. 모든게 뒤집혀서 다 사라질 정도로
불었으면 싶습니다.



푸른빛이군요. 정말 생각대로 푸른빛이었습니다. 여기선
아무리 눈물을 보여도 그녀는 절대로 알지 못할 겁니다.
조금은 춥습니다. 하지만 왜 이리 포근한지 모르겠군요. 푸른
빛이 이젠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이젠 좀 잠을 자야
겠습니다. 정말 피곤합니다. 이젠 좀...




첫장 - 하늘 빛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대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요.
나를 이해해 달란 말조차 꺼낼 수 없을 것 같군요. 가지 말아야
하는데, 오늘을 잊어버렸어야 하는데.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은
내 어리석은 욕심에 집을 나서려 하는군요. 정말 사랑했었습니다.
정말로...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동요시킬 생각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전엔 정말 좋아했었다고. 이젠 예전
그 느낌 사라진지 오래라 아무렇지도 않다고. 또 이젠 예전처럼
쉽게 울지도 않는다고. 그 얘기, 그 얘기가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진입니다. 기억할지 모르겠군요. 낡았다는 생각이 들겁니다.
내 실수로 세탁기에 들어가는 바람에 낡아 버렸습니다. 며칠
전에 정리하다가 처음 찾았습니다. 그런 사진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돌려 드릴까 합니다. 어차피 필요 없는 사진이고
짐만 되버릴 사진입니다.

혹 이 사진, 두 사람 모습에 대한 기억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어느 두꺼운 갈피 속에 넣어 두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 없게, 찾다가 포기해 버리도록 말입니다.
기억에서 잊혀지도록 말입니다.

시간이 다 되었군요. 이젠 집을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
부디 행복해야 합니다. 부디...




둘째장 - 푸른 빛

안됩니다. 그건 정말 안됩니다. 그런 식으로는 안됩니다. 나를
보라구요. 이젠 눈물이란 걸 잊은지 오래라구요. 잊고 살아온지
벌써 여드해라구요. 이제 와서 또...

압니다. 잘 압니다. 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누구
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됩니다. 그렇게 까지
멀리는 안됩니다.

난 어떡하라고요. 나보고 어떻게 하라구요. 이젠 힘이 듭니다.

언제나처럼 웃으면서 살기엔, 오랜 상처로 무뎌진 내 가슴을
그냥 그렇게 안고서 살기엔 이젠 너무 힘들다고요.

그러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흐린 여름날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내 가슴속 부연 침전이 다시 떠오르면 또 한번
빗소리에 내 슬픔을 섞곤 하는 그런 삶은 너무, 너무 힘이
든다고요. 그냥 그렇게, 그렇게 살기엔 이젠 너무 지쳤다고요.

그런 식으로 가버리면 안됩니다. 또 나를 시험에 들게 해선
안됩니다. 이번에 정말 자신이 없단 말입니다. 그대 영전에서
또 한번 그 웃음을 보일 순 없단 말입니다. 도대체 내게 무얼
바라는 겁니까. 내가 어떻하길 바라는 겁니까. 너무합니다.
그댄 정말 너무합니다.

왜... 왜...

사진도, 봉투도 그대로 내게 남겨둔채 가 버리면 난 어떻하란
말입니까? 난... 난 도저히 내 손으론 그 사진을 어찌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언제까지 거기서 나를
괴롭힐 건가요?

차라리 내앞에 와서 떳떳하게 또 한번 내 눈물에 조소를 보여
달란 말입니다. 욕이라도 좋고 핀잔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니...

좋습니다. 나도 이젠 더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그 대 간길
내 겁에 이젠 못 가지 않습니다. 그대 무서워, 내 눈물 아니
흘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 대 간길 따라서도 내 그대 다시 못
볼까 하는 마음에 눈물 흘리는 것 뿐입니다. 갑니다. 나도
갑니다. 대신 그대 꼭 기다려야 합니다. 그대 가지 않고 나
기다려야 합니다. 만나서 꼭 보여줄 겁니다. 이번엔 억지
웃음이 아닌, 눈물 고인 웃음이 아닌 정말 웃는 내 모습 보여줄
겁니다.

그러니 부디 이번만은 날 기다려 주기 바랍니다.

그때까지, 그때까지만...

안녕 내사랑.

안녕...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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