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단편] 3년 전 쓴 단편 - Numerical Nonsense
  from  
by  doortts at 2004년 11월 08일 Monday , Hit : 5771  


그나마 이게 가장 최신작이로군.
직장 구하고 나서 얼마 안되었을때,
쓴 단편 소설.

나름대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편이다.



...........

Numerical Nonsense 01

..........


" 안녕하세요 ? 요즘은 매일 보네요? "

난 그에게 정겹게 인사를 붙인다. 요즘들어 매일 그를 보며 지내지만 언제나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
난 그걸 삼천 이백 스물 네시간 전에 알았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보다 3분 12초 빨리 그를 만났다.

"예.. 그러내요. 후와~"

어설프게 웃으며 그녀의 인사에 대꾸하지만, 사실 오늘의 그녀는 나보다
0.5초쯤 빨랐다. 아쉽게도 오늘은 내가 인사를 받는 쪽이 되버렸다는 말이다.
내가 그녀와 처음 인사를 나눈건 162일 하고 반나절 전이다.
물론 그녀를 알게된지는 그보다 3일 앞선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건 유일한 여자다.
그래서 난 그녀가 맘에 든다.

그 와 함께 탄 이 엘리베이터는 정원 20명에 180Kg 까지 견딜수 있는
엘리베이터이다. 즉 장정 20명이 풀로 다 타도 끄떡없다는 소리다.
그런 막강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사람은 나를 빼고는 단 한명 뿐이다.
3미터 남짓한 공간에서 난 그와 직선거리로 가장 먼 곳에 위치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채 두발자국 거리도 안된다.

그녀는 내 대각선 뒤, 엘리베이터 모서리에 서있다.
난 굳이 뒤돌아 보지는 않았지만,  15도 각도로 옆을 보면 생기는 반사각으로
인한 은색 금속문에 비친 실루엣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위치한 곳은 이 작은 공간속에서 나에게서 떨어질수 있는 가장 먼 곳이다.

내가 내리는 층은 28층. 그는 나보다 한층 더 가서 29층.
이 엘리베이터로 28층에 도달하는데는 중간에 정지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약 20초정도 걸린다. 그렇다면 대략 한층을 올라가는데 0.7초 정도 걸리는 셈이다.
한층을 3미터로 잡았을때 1분에 270미터정도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 평소보다 심박수가 30정도 증가 하니까
한 층 올라가는데 두 번 반정도?
고속 엘리베이터의 기압차로 인한 심박수 증가까지 따져보면,
평상시보다 거의 배 정도 뛰는 셈이다


...................
Numerical Nonsense 02
...................


그녀와 나와는 거리는 불과 두 발짝 내외.
하지만 그 간격, 단 3미터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4층을 넘어서고 있었다.
12초 경과.
엘리베이터가 조금 느리다. 난 언제나 처럼 숨을 참는다. 내가 숨을 참는 이유는,
그녀곁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짧아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걸 걸리느니
차라리 숨을 참고 있는게 더 낫다. 눈 감고 20초 정도만 참으면 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10초를 버티기도 힘들다.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난 언제나 앞만을 본다.
시선을 함부로 돌리는 짓 같은건 절대 하지  않는다.
물론 쳐다본다고 해서 어떤 다른 종류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따위는
없으리란걸 잘 알지만, 마치 도둑이 제발저린다고나 할까?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말이없다.
가끔은 마네킹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내 시계의 분침은 35분을 가리켰었다.
오늘은 집에서 이곳까기 78분만에 온 셈이다. 아니, 정확히는 72분이다.
나머지 6분은 아래층에서 그녀를 기다리는데 썼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그녀가 이 사실을 눈치 챌 확률은 zero다.

1미터 75에서 퍼센트 오차 플러스, 마이너스 1%..
그게 내가 추측하는 그의 키다. 내 모습이 금속 코팅된 엘리베이터 문에
맺히는 상과 그가 비춰지는 상에서의 키 차이는 저번에 확인한 바로는
내 손으로 한뼘하고 손톱 만큼이다.
내 손 한뼘의 길이는 15센티이니까 대략 16센티차가 나는 셈이다.
그리고 그와 나의 거리는 직선거리 3미터. 나는 약 45도 뒤에서 그를
올려다보기때문에 문에 비치는 그의 키에는 12도 정도의 왜곡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계산해 보면 대충 그렇게 나온다.

오늘은 21일. D-day까지는 7일 남았다. 엘리베이터 속도 만큼이나 시간도 빨리간다.
정원 20명인 엘리베이터에 탄 건, 단 둘이지만, 공기의 무게는 그에 못지 않다.
그녀의 키는 얼마나 될까? 저번에 그녀가 기대어 섰던 엘리베이터 구석에 가서 본결
과,
그녀는 키는 내 코밑정도이다. 7센티 힐 또는 밑창을 가진 신발을 신었다고
가정할때 161정도 되지 않을까? 문뜩 이런 생각에 6초나 썼다는걸 알게 되자
약간 화가 났지만 이내 진정했다. 엘리베이터가 19층에서 멈춰섰기때문이다


...................
Numerical Nonsense 03
...................

너무 빨랐다.

그녀는 언제나 황급히 내렸다. 뒷모습을 보이는게 싫은걸까? 아니면,
나와 함께 있는 둘만의 20초에서 단 1초라도 줄이고 싶은걸까?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어색한 공기의 무게에서 벗어날 생각만 하고 있는게 아닐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 여자.. 뒷모습 같은거에 신경쓸 필요따윈
없는데... 어차치 난, 앞모습도 제대로 본적이 없어서 잘 기억하지 못한다구..

난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도착하곤 한다. 난 내일의 특성상 적어도 30분은
일찍와야 하는데, 종종 늦곤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 '종종'에 포함되는 날인것 같다.

요 며칠동안 그를 보게되었는데, 이제는 아침에 그를 보게 되면
이런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버린다.
'오늘도 지각인가...'
나를 보고 0.5초 정도 웃었던 그의 미소가 우울한 지각날 아침의 위한거리가
되버린다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저번에 한번은 엘리베이터 점검때문에 비상계단으로 걸어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정말 말그대로 끝도 없는 계단이 펼쳐있었다. 한층에 계단수는 30개x2 = 60.
내가 있는 곳이 29층 이니까, 29 x 60 = 1740 계단. 여기서 마이너스 60.
(왜냐하면 29층으로 계산하면 지하까지 내려가는 셈이니까)
결국 1680계단을 걸어서 내려갔다. 이런거 계산하고 있으면 불 같은거라도 나서
비상계단을 이용하게 되었을때,
시작부터 질려버려서는 피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그녀는 어느샌가 내려 버렸다.

그를 볼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는 언제나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빠져있곤 했다.
옆도 안보고 그렇다고 정면을 쳐다 보는 것도 아니고. 항상 무언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내가 보는 세상과 많이 다를까?
내 키 차이만큼의 시각차이... 그런 정도는 아니겠지..
그의 그런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문뜩 문뜩 우리는 같은 시공간상에 존재하는것
같지가 않다.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그의 모습이 보이는 건,
그건 일종의 자기 망상에서 시작된 데자뷰의 일종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비록 신기루 일지라도 그 때 난,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싶었다.
한걸음만 다가서면 닿을 듯한 곳에 서 있었는데 말이다.

엘리베이터는 28층에서 정확히 열렸다.
한 번쯤은 지나쳐도 괜찮은데.. 한번쯤은 멈춰버려도 괜찮은데..
언제나 어김이 없다.

그 이상한 나라, 신기루의 땅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늘 걸린시간은 35초.
크게 숨을 들이키고 난 그를 뒤로 한 채 그곳을 빠져 나왔다.

자... 내 세계로의 귀환이다.





(Sunday)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읽음
158   유감십년으로 사라진 나 doortts 2009/06/06 107840
157   Hard time doortts 2008/02/24 6318
156   단 한번도 doortts 2007/09/26 5864
155   Far and away [1] doortts 2007/02/11 6080
154   일자리 옮기고 나서 쓴 자기 소재 AtoZ [5] doortts 2005/07/06 6846
153   내 사진 doortts 2005/07/02 6830
152   어떤 용서에 대한 이야기 doortts 2005/06/08 6160
151   Same people, Different world [1] doortts 2005/04/06 5974
150   쉬운 길 [1] doortts 2005/03/14 5892
149   4년의 끝 [2] doortts 2005/01/29 6073
148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doortts 2005/01/27 5577
147   무단 광고글에 대한 토의 [4] doortts 2005/01/09 5955
146   결핍 - The mirror side of the Lack [1] doortts 2004/12/27 6017
  [단편] 3년 전 쓴 단편 - Numerical Nonsense doortts 2004/11/08 5771
144   [단편] 9년 전에 쓴 단편 - 푸른 빛 doortts 2004/11/08 5471
143   [단편] 미소속으로 [1] doortts 2004/11/08 5484
142   아름다운 인생, 그리고 멋진 삶, 혹은 여유로운 일상 [2] doortts 2004/11/03 6450
141   [단편] 94년에 쓴 단편 소설 - 겨울나기 doortts 2004/11/01 5481
140   [사진] Hungry man in Tokyo... [4] doortts 2004/10/19 5923
139   Wanted and to be wanted [2] doortts 2004/10/12 5571

1 [2][3][4][5][6][7][8]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doort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