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디의 선택과 수년간 이 아이디를 쓰게 된 원인을 제공해준

故 Robert A. Heinlein의 글중에서....


여름으로 가는 문 (1957년 출간)


로버트 A. 하인라인 (Robert Anson Heinlein)
 
 


<6주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전 겨울, 중재자인 수코양이 페트로니우스와
 나는 코네티컷의 낡은 농장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도 그 농장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맨해튼 피폭 지역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휴지처럼 타오르던 그 모습은 잊을 길이 없다. 설사 남아 있다
 하더라도 낙진 때문에 살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그때 그곳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상하수도 시설이 안 되어 있어 집세는 쌋지만, 식당 북창(北窓)의
 빛은 나의 제도판을 알맞게 비춰 주었다.

결점이라면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문을 11개나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트 - 페트로니우스의 애칭- 의 문까지 계산하면 12개였다. 나는 늘 피트의
전용문을 마련하느라 애써왔다. 그 집에서는 빈 침실의 창문에 짜맞춘 판자가
피트의 문이었다. 고양이 문을 만드느라고 내 인생을 너무 허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피트는 대개 자기 문을 사용했지만 어떨 땐 사람 문을 열라고 나를
을러대기도 했다.그게 더 좋은 모양이었다. 특히 밖에 눈이 쌓여 있을 땐
좀처럼 자기 문을 쓰지 않으려고 떼를 썼다.

콩알만할 때부터 피트는 명쾌한 원칙을 마련했다. 나는 주거, 식량, 난방을
책임지고 나머지는 모두 피트 소관이었다. 피트는 특히 난방 문제에 예민했다.
코네티컷의 겨울은 보통 지독한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날이면 피트는 자기 문을
닫아 걸고 바깥 나들이를 거부했다. 발밑에 밟히는 하얀 눈이 기분 나쁘다나.
그러고는 사람 문을 열어 달라고 떼를 썼다.

피트는 적어도 문 하나쯤은 여름으로 나 있을 거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문을 일일이 활짝 열어 보이면서 밖이 아직 겨울이라는 것을 피트가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다음 문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피트의 실망이
커질수록 나의 관리 소홀을 트집잡는 피트의 질타도 거세지게 마련이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집안에 앉아 있다가 솟구치는 눈물을 못 참겠는지 냅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덜덜 떨면서 돌아온 피트의 발에는 얼음이 달려 있어 마룻바닥을
걸을 때마다 나막신 소리가 났다. 피트는 나를 힐끔 쳐다볼 뿐 얼음을 다 씹어먹기
전까지는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런 연후에야 나를 용서해 주었다.
물론 다음 번까지만.

그렇게 피트는 여름으로 가는 문을 끝끝내 찾고 싶어했다.
1970년 9월 3일, 나 역시 그 문을 찾고 있었다.

<중략>

한 가지 걱정은 피트가 나이를 먹어 뚱뚱해졌고  여전히 배우자를 맞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트는 나보다 먼저 아주 기나긴 잠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용감무쌍한 피트의 영혼이 여름으로 가는 문을 찾아내어 따뜻한 무릎에서
다시 잠들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피트를 위해서 우천시에도 사용할 수 있는 <고양이 욕실>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피트는 밖이 더 좋은 모양이다. 피트는 문들을 죄다 열어 보면 적어도
그 중의 하나는 여름으로 뚫려 있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아직도 갖고 있었다.

그래, 피트. 네 생각이 맞다.